주변에서 제게 ChatGPT의 등장으로 인한 미래에 대해 최근 많은 질문을 하시기에, ChatGPT에 대한 짧은 단상을 남겨봅니다.
지금쯤이면 IT 업계를 비롯해 미래 기술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ChatGPT에 대해 한두마디씩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항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럴싸한 분석이나 미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날리는 셀럽들과 ‘겉보기에 전문가’들도 참 많습니다. 물론 사실 상당수는 귀 담아 듣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과하고 호들갑스럽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업들도 부디 매몰되지 말길 바랍니다.
기술이나 가능성에 대해 논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만, 지난 몇 주동안 ChatGPT를 활용해보며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아주 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글은 왜 그러한지에 대한 단상입니다.
ChatGPT는 타이틀 그대로 채팅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한 GPT (Generative Pre–Training) 기술 혹은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채팅 인터페이스를 적용하다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ChatGPT와 대화한다” “ChatGPT에 물어봐라”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름이 Chat~ 이라서? 아무튼 이러한 이야기에 아무도 의문을 재기하진 않습니다.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하는 행위를 검색한다(searching)고 한다면, ChatGPT는 단지 그 행위를 채팅을 하는 인풋 요소에 할 뿐인데 물어본다(asking), 이야기한다(telling)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UX 측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검색은 1회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UX가 중요합니다. 검색어를 잘 넣어서 내가 원하는 정보에 바로 접근할 수 있으면 사용자는 좋아합니다. 검색 결과가 우수하다는 것의 정성적 의미는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니, HCI 측면에서 상호작용 결과를 정보 설계로 보여줄 때 최상단 혹은 눈에 잘 띄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 물어본다”거나 “~ 이야기한다”, 즉 대화는 연속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UX가 중요합니다. 특히, 컨티뉴이티(Continuity)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대화형 인터랙션(Conversational Interaction)의 핵심입니다. 대화는 상호간에 지금 당장 무언가를 이야기 하든, 오늘 이야기 한 것을 일주일 뒤에 이야기 하든, 3년 전에 있었던 대화를 오늘 다시 꺼내며 이야기 하든 연속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이하 HCI) 분야에서는 대화형이 단순히 핑퐁(말이 서로 오가는 과정)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일찌감치 대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터랙션 할 수 있게 디자인 되었지만, 우리가 대화형 인터랙션을 하고 있다고는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윈도우 PC를 사용하다가 에러가 발생해 블루스크린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하고 메시지가 뜨지만, 우리는 이를 두고 대화형 인터랙션이라 느끼진 않습니다. 보통 이것을 다이얼로그 박스(Dialogue Box)라고 하여, 컴퓨터와 응답(response)을 주고 받는 형태로 보여주고 인터랙션을 해오던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채팅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화면에서는 인간-인간 사이의 대화처럼 이름도 부르고 거기에 대답하고 또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과정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 인터랙션 내용이 어설퍼도 대화형 인터랙션을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현재의 챗봇(Chatbot)이라 불리는 종류의 솔루션들은 대부분 HCI 관점에서 제대로 대화형 인터랙션을 디자인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이러한 경험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온갖 시도들이 AI 기술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를 AI 기술로 불어보려는 AI 업계의 시도가 잘못되었고 현명하지 못한 접근법이라고 지적해 왔습니다.
각설하고, ChatGPT는 웹 상에서의 DB를 학습해 사용자의 질문이나 대화 시도에 대해 적절한 방식으로 결과를 뱉어냅니다. 뱉어 내는 스타일은 사용자로 하여금 “대답을 꽤나 잘하는데?” 하는 인상을 줍니다. 한글이 유독 그런 것 같지만 타이핑 하듯 대답을 인터랙션으로 보여주니 0.27초, 0.42초 만에 결과를 보여준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구글의 검색 결과 화면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인터랙션 경험을 제공합니다. 심지어 사용자와 인터랙션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기억하고 있다가 중간에 적절한 맥락에서 끄집어내 대화 속에 활용합니다. 아주 몇 가지 요소들이 기존의 챗봇과 다른 방식을 취해 인터랙션 하는데 활용되고 있는데, 영리한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UX 측면에서 아직 멀었다, 실망에 가깝다고 평가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로, 대화에서의 흐름(flow)이 빠져 있습니다. ChatGPT는 아직 미완성인 관계로 이를 어떤 툴로 정의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Open AI는 GPT-3를 활용해 Chat~ 을 붙인 시스템을 내놓은 만큼 대화형 인터랙션에서 사용자와의 대화 흐름이 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화의 초기에는 사용자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ChatGPT 상에서는 전혀 디자인 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ChatGPT의 가능성이나 능력에 비해 대화형 인터랙션의 핵심인 사용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UX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AI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기술만으로 안됩니다. HCI 분야에 대한 기본 이해와 기술 개발, 이를 통한 UX 설계의 3박자가 갖춰져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ChatGPT이 대화형 인터랙션을 전제로 작동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대화 경험이 관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UX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대화에서의 역할(role)이 빠져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ChatGPT를 무언가 검색하거나 알고 싶은 부분을 알려 달라는 식으로 질문했거나 대화를 시도해봤을 겁니다. 놀라울 정도로 잘 정리해주거나 설명해주니 대화 시도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차원에서 UX가 잘 설계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검색이 탐색(explorering)과 요약(summarizing)이라는 두 측면에서 이루어졌다면 ChatGPT를 통한 검색은 사실 탐색 경험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용자는 단지 요약된 결과값으로서 대화 응답을 받으면 끝나는 대화이므로, 마치 전화 통화에서 ‘용건만 간단히’ 라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따라서, ChatGPT가 검색의 두 측면을 대화형 인터랙션으로 사용자에게 효용 가치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대화로써의 의미를 전달하려면 탐색 과정의 어시스턴트 역할(role of assistant)로써 대화형 인터랙션을 설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대화에서의 의외성(unexpectedness)이 빠져 있습니다. 사실 이 지적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대화에 의외성이 있으면 사용자가 당황하지 않겠나?”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UX에 대한 기본 이해도의 차이일 수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소위 ‘구글링’ 이라 불리는 검색 과정에서 다양한 의외성과 마주합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 지난 40여년의 세월동안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폼팩터가 변해도 컴퓨터와 인터넷의 현 모습을 결정지은 불변의 진리와 같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개념이 이를 제공해줍니다. 앞서 언급한 탐색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새로운 지식의 확장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하이퍼텍스트가 제공하는 UX 측면에서의 의외성 덕분입니다. ChatGPT는 구현 모델의 특성상 어떻게든 최적화(optimize) 된 결과로 정리해 대답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화의 주체자인 사용자로 하여금 지식 정보의 확장 기회를 박탈합니다.
ChatGPT는 UX 측면에서 컴퓨터 공학 분야, 그리고 HCI 분야에서 패러다임 시프트를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역시 모두가 토론하기를 좋아하거나 지식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평준화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기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HCI 기술은 자칫 소수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절대 다수의 생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ChatGPT의 UX는 대화라는 형식을 차용했을 뿐, 아직 대화의 대상이자 우리 삶의 동반자(Companion)로 함께 협업하거나 도움을 받기엔 너무 어설픕니다. 그리고 이 UX가 사용자로 하여금 잘못된 의식과 윤리적 결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ChatGPT가 기술이 아닌 경험 측면에서의 혁신과 방향성에 HCI 연구자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 즉 인간의 문제는 이 가능성을 제약할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결국 저와 같은 HCI 연구자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장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