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규의 창업가 조언 시리즈 02] 좋은 초기 스타트업, 팀 스펙이 아닌 팀 협업 R&R이 판가름 한다.

초기 스타트업을 투자하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창업자, 혹은 초기 스타트업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팀 구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소위 좋은 스펙을 가진 구성원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은 초기부터 밸류가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나로써는 서류에 적힌 몇 줄의 스펙 만으로 이 정도 밸류가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 팀 구성의 면면이 아무리 괜찮아도, 그 팀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투자자로써 초기 스타트업을 볼 때 창업자가 조직 내 협업하기 위한 역할과 책임(Role and Responsibility, 이하 R&R)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특히 중요하게 본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창업자가 팀 협업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설정하는 것이 좋은 결과물을 내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협업 개념을 “같이”, “함께”, “공동의 결과물을 위한 공동 작업” 정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협업이 필요하지 않은 일 조차도 허울 좋은 협업으로 풀어내려고 하고, 불필요하게 일을 조각내고 억지로 개인에 대한 R&R을 정하려 든다.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조직이 일을 시작할 때 쉽게 하는 실수가 바로 개인에게 포지션의 형태로 R&R을 부여하는 것이다. “너는 디자이너니까 디자인”, “너는 개발자니까 개발자”, “너는 PM이니까 전체 조율하고…” 식의 포지션에 기반한 R&R 설정은 되려 일의 효율성과 안정성, 상호 이해도를 떨어트린다.

명심하자. 작은 조직일수록 개인의 능력치는 기능적 측면보다 구성적 측면에서 결정된다. 역할과 책임이 교집합으로 묶여 상호 보완적으로 발휘될 때, 비로소 협업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100의 능력치가 120이 되고 150이 된다. 따라서 초기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능적 R&R을 개인 레벨에서 나누려고 하지 말고, 상호 협업하는 과정을 위한 구성적 R&R을 조직 레벨에서 부여해 조직 전체가 함께 짊어지고 가는 형태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는 바로 실행력으로 나타난다. 실행이 빠른 스타트업은 조직 내 구성원의 R&R이 개인보다 조직에 있었다. 실행력을 중요시하는 창업자와 구성원들일수록 개인이 가진 기능적 능력보다 구성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협업 R&R을 설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실행이 느린 스타트업은 조직 내 구성원의 R&R이 조직보다 개인에 있었다. R&R이 개인에 락인 되어 있다보니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포지션 별로 수만가지 방향성을 지시하거나 지향하다보니 서로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작은 조직일수록 어떤 관점에서 협업 R&R을 설정해야 할까? 다음 2가지를 참고해보기를 바란다.

1. R&R을 기능보단 구성으로 나눠라.

앞서 언급했지만 디자이너, 개발자, 영업,… 기능적으로 이러한 포지션에 기반한 R&R은 작은 조직일 수록 맞지 않다. 대기업은 언제든 교체되어도 작동 되는 기계의 톱니바퀴 처럼 R&R 분리를 기능적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조직은 서로가 맞물려 돌아가 톱니바퀴가 하나 떨어져도 계속 돌아야 한다.

따라서 특정 R&R을 짊어지지 않고 반드시 나눠 지도록 조직 구성원들을 그룹핑(grouping)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개발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개발에 관한 R&R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가진다면 개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른 구성원들이 해당 R&R의 일부 비중을 가져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개발을 몰라도 약간의 비중이라도 R&R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다.

2. 결과가 아닌 과정에 R&R을 부여해라.

일반적으로 R&R을 나눌 때 결과물을 중심으로 나누는 경향이 강하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결과물을 기반으로 R&R을 나누면 방향성을 일어버리기 쉽고, 대기업의 나이와 직급 순으로 결과를 책임지게끔 하다 보니 탑다운 방식이 담보되지 않으면 소위 완장을 채우기가 힘들다. 스타트업의 섣부른 직급 파괴가 일의 협업에 잡음을 낳는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따라서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조직에서는 협업 과정에 R&R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는 한순간에 결정되는 만큼,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생존 여부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후회가 없도록 하려면 과정에 대한 R&R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협업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구성과 과정에 R&R을 부여하는 것이 협업에 관한 한 가장 좋은 R&R 부여 방식이다.

글로벌 컴퍼니에서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지며 나온 수 많은 창업자들은 좋은 팀 멤버들을 비교적 쉽게 설정한다. 그러나 팀이 깨졌다거나, 일이 속도를 내지 못해 기회를 잃는 스타트업들 역시 심심찮게 보인다. 그만큼, 뛰어난 개인도 조직 이상의 능력을 낼 수는 없다.

협업 R&R을 잘 설정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흥망성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창업자들이 잊지 말기를.

© Ala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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