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I 관점에서 바라본 웨어러블 디바이스, 그리고 패션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관련 연구의 필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HCI 분야는 다양한 도메인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간 연구 도메인의 중심축은 특히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hand-held 제품 군들에 있었다. 이러한 폼팩터에서의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 방식과, 네모 사각의 화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세상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여전히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류에 가장 보편화된 Dominant Form Factor (지배적 폼팩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HCI 분야에서 다루고 있는 3요소인 Interface, Interaction, Architecture와 이를 통해 제공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가치(Usability, Usefulness, Affection)에 관한 연구는 모두 이 네모 반듯한 사각 화면과 이로 인해 거의 균일화 된 Dominant Design (지배적 디자인 – 하나의 제품 군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제품들이 유사한 형태를 띄는 디자인)에서 벌어지는 세계에 대한 것이 주가 되었다. 예를 들면 버튼 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버튼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터치 방식의 인터랙션 피드백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화면 속 정보를 더욱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지 등이 HCI 분야의 3요소에 관한 연구 예시들이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상호작용성(social interactivity) 촉진 시스템 개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이론을 기반으로 한 맥락 정보 공유 행위(context sharing) 유도 디자인, 협업적 플랫폼에서의 사용자간 공헌도에 관한 실증 연구 등이 3요소를 통해 제공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가치에 관한 연구 예시들이다.

그러나,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 주제들이 갖는 틀을 완전히 깨버리고 있다. 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틀을 깨버리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크게 2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미 존재 했던 ‘입는(wear, or wear-able)’ 컴퓨터에 대한 제한적 관심이 main stream으로 옮겨왔다는 점이다. 본래 HCI 분야와 같이 다(多)학제적이고 융합적 속성을 가진 분야에서 연구자들의 수가 적다는 것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value creation power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용자 경험(UX)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연구를 하기에 기술적으로 시기상조이거나, 실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implementation 하기 어렵다는 한계로 이어진다. 실제 필자는 2013년 초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Wearable Computing과 관련한 기존의 기술적 연구 분야와, 인간이 살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 3요소 의식주 가운데 ‘의(衣)’에 관한 인문학 관련 연구 분야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후자는 물론이거니와, 전자의 경우에도 HCI 분야에서 추구하는 사용자 중심(Human-Centered)의 연구는 타 도메인(컴퓨터, 스마트폰, 소셜 컴퓨팅 등)에 비하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던 분야인 덕분에(?), 현재의 상황처럼 main stream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이동하는 환경에서는 기존의 research scope이 다른 방향으로 확장 될 것이다. 일례로, 소셜 컴퓨팅 기술의 대두로 HCI 분야는 이미 한번의 paradigm shift가 있었다. 이를 통해 사용자 간의 1대1 커뮤니케이션에 대응하는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연구 주제의 축에서 벗어나,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같은 가상 세계로의 확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다수의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에 대응하고자 새로운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시스템 연구가 활발해졌다. 여기에 전통적인 Cognitive Science에서 밝혀낸 인간의 기본적인 인지 원리를 이해하고, 가상 세계에서의 사용자 간 상호작용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Communication Theory를 도입해 설명하며, Social Science에서 언급되던 이론을 기반으로 다수의 사회적 집단에서 사용자 간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들이 진행되며 HCI 분야의 학제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학제적 촉매제의 역할을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할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로, 또 다른 혁신(innovation)과 관성(inertia) 사이에서 새로운(novel) 관점에서 HCI 분야에서의 연구의 필요성이 훨씬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시대에서 30년 가까이 종속되어 왔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젖혀두더라도, 이 두 가지 발명품들이 HCI 분야에서 꽤 오랜 기간 Interaction의 측면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에는 부인할 사람이 없다. 이에 더불어 Interface의 측면에서 GUI가 추가 되고, 사용자들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끼치는 각종 소프트웨어와 WWW기반의 서비스들의 범용화는 우리가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Architecture의 측면에서 특히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제한된 화면 내에서 사용자에게 최적화 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졌다. 물론 편의상 구분하여 설명하였지만 이 3요소는 꾸준히, 그리고 동시 다발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이 기존의 피처폰에 대한 사용자들의 관성적 선호를 일시에 깨어버린 것은 불과 5년 정도의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 사이 HCI 분야에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한 3요소의 연구는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주는 새로운 가치에 관한 연구들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혁신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반 사용자에게 있어서 이미 친숙해진 디바이스에 대한 관성은 그 혁신의 수용을 더디게 만들곤 한다(심지어 기술의 혁신이 도태되게 만들기도 한다.). 즉, 현재의 관성으로 인해 사용자들은 쉽사리 새로운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HCI 분야의 역할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기존의 지배적 폼팩터인 스마트폰과는 그 형태나 목적성이 완전히 다르며, 따라서 새로운 Interface, Interaction, Architecture 요소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해졌다. 또한, 새로운 지배적 폼팩터를 통해 얻는 가치 역시 새로운 Usability, Usefulness, Affection 요소들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론 이러한 가치 요소들보다 더 broad한 차원에서의 새로운 가치 개념들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단순히 새로운 제품 군의 출현이 아니라 HCI 분야에서 학제적으로 연구 주제의 큰 틀을 변화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다 가치 중심적인 연구들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관련된 3번 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학계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로써 학문적 고민과 물론이며, practical implication을 얻고자 작년부터 업계의 동향과 관점을 전부 트래킹 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얻은 몇 가지 깨달음 가운데 오늘은 패션에 대해 간단히 논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관련하여 이종 간 융합에서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그 속성이 기존의 것들과는 외형적으로 다른, 그러나 아주 중요한 단 한가지 특성이 있다. 바로 패션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쓰는 모바일 디바이스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항상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패션 특성’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IT 기업들이 패션 기업들과의 협업(collaboration)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 구글은 2012년 9월 미국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열린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VF)’ 패션쇼를 통해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직접 Google Glass를 쓰고 나오면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본질이 ‘입을 수 있다’는 것에 있음을 드러냈다. 삼성은 갤럭시 기어를 중심으로 스와로브스키 등 패션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패션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형태로 ‘입어서 예쁜’ 가치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모든 움직임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스마트폰과 달리 일단 입어야 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전략에 의문이 있다. 패션이 과연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중심인가? HCI 연구자로써 패션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역할은 기존의 패션 산업에서 하던 것과 동일할 것이어야 한다. 패션이 추구하는 철학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사는 사람에게 옷을 팔려면 입을 수 있고, 입어보고 싶어야 한다. 패션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입어서 좋은 이점은 옷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나를 나타내주는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에서 드러나야 한다. 디바이스에 보석을 박아 넣거나, 컬러를 예쁘게 하거나 세련된 모양을 내는 작업들은 이미 과거에 피처폰에서 썼던 전략이고, 그 전략은 앞서 밝혔던 Dominant Design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IT 기업 역시 접근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입을 수 있다’는 것과, ‘입어서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Smart-Glasses나 Smart Watch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는 이러한 종류의 것들(things)을 ‘디바이스’ 그 자체로 인식한다. 필자의 연구 경험을 빌어보자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혹은 스마트폰이 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영역인데 자신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전자 기기’라는 것이다. 패션은 이 전자 기기를 입었을 때 드러나는 일종의 디자인이기 때문에, 패션에 몰두한 나머지 전자 기기로써의 가치를 상실시켜서는 안된다. IT 기업이 가져야 할 관점은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전자 기기의 차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Design is the fundamental soul of a human-made creation.

故 스티브 잡스

본래 HCI 분야에서 디자인은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데 중요한 영역이다. 디자인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의 본질적인 영혼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그만큼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창조적이고, 한편으로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을 대변한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이전의 피처폰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외형적 메타포가 주는 심미성을 사용자에게 어필한 피처폰들이 정말 많았다. 벤츠폰, CEO폰 등 폰 자체가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주는 제품들은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예시들이다. 그 자체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HCI 분야의 관점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 패션과의 융합을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너도 나도 패션의 다양화를 통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UX를 설계하는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중의 하나가 ‘보이지 않지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UX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오히려 외형적인 부분보다 인간의 내재적 가치에 집중한 패션이 오히려 올바른 발전 방향이 아닐까?

* 본 칼럼은 모바일 트렌드 디자인 제11호(2014년 6월)에 기고한 기고글의 원문입니다. 기고글은 원문과 편집 방침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 기고글: http://bit.ly/2QABx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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